율리사(栗里祠)
율리사 전경
율리사 정당
율리 세덕사 유허비
율리사는 고려시대의 명장 신숭겸(申崇謙)을 주벽으로 하여 申賢(13세, 신현), 申琿(14세, 신혼),申演(15세,대제학공파조 신연),申淇(15세, 온수감공파조 신기),申澈(23세, 온수감공파 신철),申澳(23세,온수감공파 신오) 등 평산신씨 7位를 배향한 사우로, 원래는 문중사우로서 1851년에 세덕사(世德祠)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신숭겸, 신철, 신오 등 3위를 제향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1900년(광무4)에 향중 유림의 공론으로 현재와 같은 사우로 발전 되었다.
평산 신씨가 비인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고려말 조선초기의 혼란기에 신용(申龍)이 이곳에 은둔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申龍)은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들어갔던 온수감공파조 신기(申淇)의 아들로 그후 신철과 신오의 후손들이 함께 옮겨와 살게 되면서 그 문족들이 번창하게 되었다.
1850년(철종 1)에 비인의 사람들의 연명상언(聯名上言)을 통하여 평산신씨들은 이듬해인 1851년 2월 시조인 신숭겸을 주벽으로 하여 온수감공파의 23세손인 병조참판을 지낸 신철(申澈)과 승지를 지낸 신오(申澳)등 3인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세덕사라 칭하게 된다.
이어 1900년(고종 광무8) 향중의 공론을 일으켜 위의 3위 외에 신혼(申琿), 신연(申演), 온수감(溫水監)파조 신기(申淇) 등을 추배하고 율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어 1918년에는 사우를 중건하고 1920년 고려시대의 학자로, 자는 신경(信敬)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신 신현(申賢)을 추배하여 모두 7위를 제향하게 되었다.
건물배치는 사우인 율리사가 내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방풍벽 맞배지붕이며 안에는 신숭겸을 주벽으로 모두 7위의 위패와 신숭겸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강당은 1967년 중수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강당옆에는 1929년 건립된 율리세덕사유허비(栗里世德祠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율리사는1988년 8월 30일 충청남도 지방문화재 제303호로 지정되었다. 비인현 구지에 철종 때 건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오래된 사당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 소재지 :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성검로 287번길 16-1(율리 193)
- 지정번호 : 충남문화재자료 제303호(지정연도 : 1988년 8월 30일)
- 향사일 : 매년 음력 3월 중정일, 유림행사.